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스 한 (문단 편집) == 포로 생활과 노년 == 한스 한은 소련군 병사들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다. 혹독하기 짝이 없는 소련 [[수용소]]라는 가혹한 환경에도 한스 한은 전혀 굴복하지 않고 소련군 간수들을 오히려 약을 올렸고, 틈만 나면 탈주를 시도해 수감 기간이 늘어나 7년 후인 1950년까지 갇혀 있게 된다. 이미 전쟁이 끝난지가 오랜 후에야 겨우 석방된 한스 한은 이제 민간인이었다. [[독일]]이 전쟁에서 이겼다면 한스 한은 돌아온 전쟁 영웅 대접을 받으며 호의호식하기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다행히도 그런 한스 한을 알아 본 독일의 대기업 [[바이엘 주식회사|바이엘]] [[레버쿠젠]] 제약회사는 그를 간부로 고용했고, 고슬라에서 화약을 생산하는 공장(Wano Schwarzpulver Company)의 중역이 되었다. 1977년에 공직에서 은퇴한 그는 자신의 전성기에 해협 전투를 하며 매료되었던 프랑스 남부로 이주해 노년을 즐겼다. 한스 "오시" 한은 1982년 12월 18일에 [[뮌헨]]에서 사망했다. 전쟁 동안 그는 560회 출격하며 공인 격추 108기를 기록했다. [[서부전선]]에서 거둔 66대 중에서 무려 53기가 Bf 109의 운명의 라이벌 스핏파이어였는데, 이 기록은 [[https://blog.naver.com/naljava69/220285495832|요셉 프릴러]]의 68기와 [[요제프 부름헬러]]의 56기 바로 다음에 해당되는 것이다. 또한 동부전선에서 거둔 42대의 스코어 중에는 7대 이상의 [[Il-2]] 슈톨모빅이 포함되어 있다. [include(틀:2차 세계대전/전투기 에이스 87~113위)] [[분류:에이스 파일럿]][[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1914년 출생]][[분류:1982년 사망]][[분류:고타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